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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꽁트)

복돌이

by 錦繡江山 2012. 12. 16.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한 40년쯤 되었겠군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위인전, 탐정소설 그리고 삼국지...

초등학생이 삼국지 읽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전 읽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다 보니 "불의를 버리고 사는 정의로운 삶"

이것이 제 좌우명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냇가를 건너 집으로 가는데

냇가 모래사장에 아랫동네 아저씨들이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돌을 받쳐 올려놓은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야채를 씻고 양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 잔치를 하는 줄 알고 뭣 좀 얻어먹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복돌이... 우리 복돌이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꼬리를 초라하게 밑으로 내리고

앞발을 힘주어 버티면서 묶인 줄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아!!  3년을 넘게 정 들여 키워온 우리 복돌이...

내가 집 대문을 들어설 때면 앞발을 들고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던 나의 복돌이...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엄마가 복돌이에게 고깃국을 먹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개 잡을 땐 인정사정없다는 것을...

매년 우리 동네 개들 여러 마리가 냇가 버드 나뭇가지에 목이 묶인 채

몽둥이로 맞아 죽었습니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아! 묶여있는 복돌이를 보는 순간...

그동안 처 첨하 게 맞아 죽던 개들이 생각났습니다.

 

복돌이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인지 내가 열 걸음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것도 알아 채지 못한 채 목을 빼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힘만 빼는 헛수고였습니다.

오랜만에 몸보신하려고 벼르고 벼르신 분들인데

쉽게 빠져나가게 묶어 두었겠습니까...

 

한 친구가 "복돌이 곧 죽겠구나" 하며 안타까운 시선을 내게 돌릴 때

나는 복돌이를 꼭 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친구들이 복돌이 앞을 쭉~~ 막고 서있는 동안...

나는 복돌이를 묶어 놓은 끈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복돌이는 나를 알아봤습니다.

 

아! 나는 그때 정말 복돌이의 눈물을 봤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나의 믿음직한 주인이 날 구하러 왔구나"

절망 속에서 구세주를 만난 불쌍한 복돌이는 꼬리를 어느 때 보다도 더 힘차게 흔들며 

얼굴에는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된 채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런 복돌이를 보며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단단히 묶인 매듭을 정신없이 풀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우직하고 억 센 손이 내 손을 잡아채며 냅다 

꿀밤을 때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꿀밤의 아픔보다는 가엽고 불쌍한 복돌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랫동네 무동이 아저씨는 복돌이를 버드나무 아래로 끌고 가면서

멍청히 서있는 친구들에게도 꿀밤을 한 대씩 먹였습니다.

 

나는 무동이 아저씨한테 우리 복돌이를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무동이 아저씨의 인상... 개고기로 다져진 그 험악한 인상 앞에서

"불의를 버리고 사는 정의로운 삶"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어지고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무동이 아저씨에게

끌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던 복돌이의 그 애절한 눈망울...

"3년 넘게 주인 행세를 하며 잘난 척하던 네가 나의 주인이냐!"

하면서 절규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복돌이를 살려주지 못한 비겁한 주인이 되었고...

나의 충견을 지켜주지 못한 졸장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복돌이는 그날 그렇게 내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때  복돌이의 애절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후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복돌이 만을 나의 애견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상은 어느 겨울날 동창 모임에서 술에 취한 친구가 들려준 애틋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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