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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꽁트)

우 산

by 錦繡江山 2012. 12. 24.

 

 


 

내겐 우산이 하나 있습니다.

촌스러운 색상의 낡아빠진 우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오는 날이면 늘 이 우산을 들고나갑니다.

삼국지의 조조가 전투에서 패한 후 닭갈비가 식사로 나왔는데

그것을 뜯어먹다가 "버리기는 아깝고 먹기는 그렇고" 그랬다는 "계륵"

바로 그 계륵이 이 우산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인연을 그만 끝냈으면 하는 심정으로... 

아니면 쓰고 다니 다가 아무 곳에나 그냥 놔두고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우산을 들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우산은  결코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지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시야에서 벗어나질 않고 줄곧 내 근처에 머무릅니다.

차마 억지로는 떼어버리지 못함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이제부터 이 계륵 같은 우산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작년 8월 어느 날...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밤새

누군가 고운 융으로 열심히 닦아 놨는지 깔끔하고 쨍~ 한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집 앞 도로를 냇가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그렇게

세차게 비를 쏟아 붙더니... 무슨 변덕인지...

오늘도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그 예보를

어느 바보의 헛소리쯤으로 비웃으며 이렇게 상쾌한 아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가한 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파란 하늘에 비친 행복함을 마음속 깊이 끌어들이며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하는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오후 시간... 

커피를 한잔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려 아침나절 고운빛을 찾아봤지만 

어느샌가...

그 깨끗했던 하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심술 때문인지 파란색 도화지에 

회색 먹물이 칠해지기 시작했고 그위로 먹물이 자꾸만 덧 칠해지더니 

시간이 흐를 수 록 점점 더 짙어져 갔습니다.

 

파란 행복은  아직 찾아와 주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속은 우중충한 먹빛으로 새겨지며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잔뜩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하늘은 곧 비를 쏟아 낼 기세로 협박을 하고

이에 겁먹은 나는  딱히 바쁜 일이 없음을 핑계 삼아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와  

전철을 탔습니다.

퇴근 시간보다 좀 이른 탓에 승객들이 많지 않아서 곧 좌석에 앉을 수 있었고 

내가 내릴 종착역까지는 40분쯤 걸리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종착역이 가까워졌는지 전철 안은 

한산해져 있었습니다.

다음 역명을 보니 아직 몇 개의 역이 더 남아 있어서 좀 더 자려고 하다가

무심코 앞좌석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60세쯤 되어 보였는데...

반바지 차림에 좌석 세 개에 걸쳐 양반 자세를 하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수염이 듬성듬성 난 

거친 얼굴로 명상을 하시는지 두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고... 

좌석 밑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슬리퍼가 제 주인과 똑같은 꾀 제제한 

행색으로 주위 사람들의 시린 눈총을 받으며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혐오감을 주는 모든 표현을 그는 한 몸으로 전부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자기 집 안방인가...

아니면 전철을 무슨 요가 하는 곳으로 아는 건가...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잠이 확~~ 깨며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뻗쳐 올라왔습니다.


마음속으로 몇십 번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욕을 하면서 

파렴치한 그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으려고 애써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자꾸만 시선은  앞쪽을 향하는데...

가만 보니 그는 촌스럽기 그지없고  허름 하기 짝이 없는 

우산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양손으로 꼭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색상이 촌스러워도 어떻게 저렇게 촌스럽냐...

그래도 자기 눈에는 엄청 좋게 보이나 보지...

우산을 고르는 수준도 자신의 인격과 딱 맞는구먼... 쯧...

그의 행동거지가 후안무치 하다 보니 그 우산이 이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몇 정거장 안 남았는데... 저 인간... 다음 역에서 내리기를...

그래서 더 이상 그 꼴을 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만...

그는 종착역까지 두 눈을 꼭 감은채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헉~~ 설마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서... 종착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보다 먼저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전철에서 내렸습니다.

 

개찰구를 지나 홀에 들어서자...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우산은 흠뻑 젖어 있어서

지금 비가 얼마나 세차게 내리는지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나와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오늘따라 전화를 안 받습니다.

큰일 났다... 이곳에는 우산 파는 곳도 없는데...

대책 없이 기다릴 수 만 없어서 일단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습니다.

축축한 비 내음이 느껴지며 지상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갑자기 앞쪽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곳 에스컬레이터 내리는 공간은 폭이 좁고 길이도 길지 않은 편인데

그곳을 어느 사람이 막아선 채 우비를 걸치면서...

승객들의 불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굿굿하게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아~~ 오늘따라 왜 이런 인간들이 많지... 이번에 또 어떤 인간이야..."

하며 그를 쳐다보니...

아니... 이 사람은 아까  그 양반다리 아저씨....

참나... 정말 어이가 없게 어떻게 되 먹은 사람이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지....!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데 전화는 받지 않고 우산 파는 곳은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만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우비 걸치기를 마친 그는 어디론가 갔다가  짐 바구니를 실은  

오토바이를 끌어 왔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봉고차 한대가 오더니

그 차의 짐을 내려 자신의 오토바이에 싣고 힐끔 시이드 밀러를 봅니다. 

내가 자신을 계속 째려보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시동을 걸고 10미터쯤 가다가 멈추어 서서 다시 한번 사이드 밀러를 쳐다봅니다.

얼씨구... 내가 째려보는 것이 아니꼽다 이거지..

그래 어디 한번 와봐라... 전철 안에서의 행동까지 한꺼번에 일깨워 주마...

나는 이렇게 다짐하며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정말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가슴은 쿵쾅~~ 요동을 치지만 나는 크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정말 짜증 나는 일만 생기는데 우쒸 잘 걸렸다!


그런데...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우비 주머니에서 우산을 꺼내더니

내게 내밀며 " 이 우산이 쓰고 가세요... 요즘 웬 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하면서 돌아섰습니다.

 

순간 나는 너무도 커다란 충격에 아무 생각도 못한 체 멍한 상태가 되어 

하얀 머릿속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가뿐한 몸짓으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빗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아!!!  나는  너무도 혼란스러워 지금까지도 그 사람을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고마운 사람일까요?

아니면 공중도덕도 모르는 부도덕한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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